학원 하나로 엑시트하기
1단계 9

과외/공부방 단계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의 마음

밤 11시, 식탁 위의 원장실

솔직히 물어볼게요. 지금 몇 시에 이 글을 읽고 계세요?

제 예상엔 밤 10시 넘었을 겁니다. 애들 다 보내고, 저녁인지 야식인지 모를 뭔가를 먹고, 식탁 한쪽에 채점 안 한 시험지를 밀어놓은 채로요. 식탁이 곧 원장실이고, 원장실이 곧 교무실이고, 교무실이 곧 우리 집 거실인 시기. 저는 이 시기를 '식탁 원장' 시절이라고 부릅니다.

이때의 하루는 대충 이렇습니다.

오전에 교재 프린트를 뽑다가 토너가 떨어져서 다이소를 다녀오고, 오는 길에 애들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한 박스 삽니다. (개당 단가를 계산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잠깐 현타가 옵니다.) 오후 수업 두 탕을 뛰고 나면 목이 쉬어 있고, 쉬는 시간 10분 동안 학부모 카톡에 답장을 합니다. 답장 하나에 15분이 걸립니다. 왜냐면 '네~' 하고 보낼 수가 없거든요. 이 한 통이 재등록을 좌우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니까요.

밤이 되면 채점을 하고, 채점을 하다가 '아 맞다 블로그' 하고 노트북을 엽니다. 그리고 흰 화면을 15분 봅니다. 첫 문장이 안 나옵니다. '○○동 수학 잘하는 곳'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안녕하세요 원장입니다'라고 썼다가 또 지웁니다. 결국 노트북을 덮으며 이렇게 말하죠.

"내일 쓰자."

그 블로그, 지금 몇 개 올라가 있나요? 세 개죠.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요? 지난 8년간 750개 학원을 만나면서 본 블로그가 거의 다 세 개에서 멈춰 있었거든요. 세 개까지는 의지로 씁니다. 네 번째부터는 체력이 필요한데, 그 체력은 이미 수업에 다 썼습니다.


직함이 네 개인 사람

이 시기의 원장님은 사실 원장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이렇습니다.

  • 선생님: 수업, 교재 연구, 채점, 피드백
  • 실장님: 상담 전화, 수납 확인, 학부모 응대, 결석 관리
  • 마케팅 팀장님: 블로그, 인스타, 전단지, 간판 고민
  • 시설관리팀: 청소, 프린터 수리, 에어컨 필터, 초코파이 재고 관리

네 명 몫의 일을 하는데 월급은 한 명 몫도 안 나오는 구조. 그런데 이상하게 그만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애 하나가 "쌤, 저 이번에 수학 올랐어요" 하고 씩 웃는 순간, 그 한 방에 한 달치 피로가 리셋되거든요.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쌓입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이 네 개의 직함 중에 돈이 되고, 학원이 되고, 브랜드가 되는 일은 딱 하나예요. 가르치고 관리하는 일. 나머지 셋은 필요하긴 한데, 원장님이 직접 해서 잘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간은 나머지 셋이 다 잡아먹죠.

이 시기 원장님들을 만나면 제가 꼭 물어보는 게 있습니다.

"원장님, 오늘 하루 중에 원장님만 할 수 있는 일에 몇 시간 쓰셨어요?"

대부분 대답을 못 하십니다. 바빴던 건 확실한데, 뭘 했는지가 뭉쳐 있어서요.


돈 얘기, 아무도 안 해주는 진짜 돈 얘기

숫자를 좀 볼까요. 학생 3명, 월 수강료 25만 원이면 매출 75만 원입니다. 여기서 교재 인쇄비 나가고, 간식비 나가고, 카페에서 상담하면 커피값도 나갑니다. 액수로 보면 별거 아닌데, 이 시기의 진짜 비용은 지출이 아니라 불안입니다.

'다음 달에도 이 애들이 다닐까?'

이 문장 하나가 머릿속에 상주합니다. 한 명이 그만두면 매출의 3분의 1이 사라지는 구조라서, 학부모 카톡 알림이 뜨면 심장이 먼저 반응합니다. "어머니께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문장이 되는 시기죠. (열어보면 대부분 "간식 감사해요"입니다. 그래도 다음에 또 무섭습니다.)

광고요? 못 합니다. 블로그 대행이 월 30만 원이라는데, 그 돈이면 한 달 반 식비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늘 같습니다. "내가 하지 뭐."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알죠. '내가 하지 뭐'의 끝은 블로그 세 개라는 걸.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이라는 제일 위험한 말

이 시기의 가장 큰 착각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예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다 해결될 것 같다"는 성실한 착각.

열심히는 이미 하고 계십니다. 하루 12시간씩요. 문제는 그 12시간이 어디에도 쌓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늘 민준이한테 이차함수를 어떻게 설명했더니 눈이 반짝였는지, 서연이가 어느 유형에서 반복해서 막히는지, 어떤 말로 상담했더니 어머니가 안심하셨는지. 이게 전부 원장님 머릿속에만 있다가, 잠들면 휘발됩니다.

그래서 다음 달에 같은 설명을 또 하고, 같은 상담을 또 하고, 같은 고민을 또 합니다. 열심히 사는데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이유. 버티는 것과 성장하는 것의 차이가 여기서 갈립니다.

버티기는 반복이고, 성장은 축적입니다. 그리고 축적의 최소 조건은 기록이에요.

자, 여기까지는 아마 다른 책에서도 보셨을 겁니다. "기록하세요. 문서화하세요. 데이터로 남기세요."

맞는 말입니다. 맞는 말인데요.

못 하잖아요.

저는 압니다. 750개 학원을 만나면서 "기록하세요"라는 조언을 수백 번 했고, 그중에 실제로 기록을 시작한 원장님이 몇 분인지도 압니다. 손에 꼽습니다.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밤 11시에 채점 끝낸 사람에게 "이제 오늘 수업 내용을 문서로 정리하세요"라고 하는 건, 마라톤 완주한 사람에게 "정리운동으로 5km만 더 뛰죠"라고 하는 겁니다. 조언이 아니라 고문이죠.

그래서 예전의 저는 이 챕터를 여기서 끝냈을 겁니다. "힘들지만 하셔야 합니다"라는, 맞지만 무책임한 말로요.

지금은 다르게 끝낼 수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거든요.


실장님을 고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월 3만 원에.

과거에 이 단계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을 뽑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매출 75만 원인 학원이 실장 월급 250만 원을 줄 수 있나요? 없죠. 그래서 다들 여기 갇혀 있었던 겁니다. 일을 나눠야 크는데, 클 때까지는 일을 나눌 돈이 없는 구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니라, 닭도 없고 달걀도 없는 상태.

AI가 바꾼 게 정확히 이 지점입니다.

거창하게 4차 산업혁명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런 얘기는 저도 지루합니다.) 아주 실용적인 얘기예요. 선생님 몫을 뺀 나머지 세 직함 — 실장, 마케팅 팀장, 문서 담당자 — 을 월 3만 원에 고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게 전부인데, 그게 이 단계의 구조를 통째로 바꿉니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 하나. 일을 나누려면 먼저 일을 갈라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원장님의 모든 업무는 딱 두 종류로 갈립니다.

① 원장님만 할 수 있는 일 — 가르치기, 아이의 상태를 판단하기, 우리 학원의 교육 기준 세우기, 학부모와 신뢰 쌓기. 한마디로 '판단과 진심'이 필요한 일. 이건 AI가 못 합니다. 하면 안 되고요.

② 원장님이 안 해도 되는 일 — 시험지 오답 분류하기, 상담자료 만들기, 블로그 초안 쓰기, 관찰 메모를 문서로 정리하기, 안내문 만들기. 한마디로 '시간과 손'이 필요한 일. 이건 원장님이 하면 밤 11시가 되고, AI 실장이 하면 3분이 걸립니다.

지금까지 원장님은 ①을 하기 위해 ②에 깔려 있었습니다. 순서를 바꾸는 겁니다. ②를 넘기고, ①에 시간을 쓰는 것. 1단계의 핵심 미션은 사실 이 한 줄입니다.


수요일 밤, 시험지 한 장의 실험

말로만 하면 감이 안 오니까, 구체적인 장면 하나를 드릴게요. 실제로 제가 원장님들께 처음 시켜보는 실험입니다.

중간고사가 끝난 수요일 밤이라고 합시다. 민준이 시험지가 식탁에 있습니다. 72점. 지난번보다 4점 올랐는데, 어머니는 아마 "그래도 아직 70점대네요"라고 하실 겁니다. (어머니들은 오른 4점보다 남은 28점을 먼저 보십니다. 원망하진 맙시다. 사랑이 원래 그렇게 생겼습니다.)

예전의 원장님은 이 시험지를 넘기면서 머릿속으로 분석합니다. '아, 이차함수 활용에서 또 틀렸네. 계산 실수도 두 개 있고. 근데 서술형은 늘었네.' 여기까지 하고 잠듭니다. 다음 날 어머니 전화가 오면 기억을 더듬어 "민준이가 응용 쪽이 좀 약한데 나아지고 있어요" 정도로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어머니 입장에선 어느 학원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죠.

이제의 원장님은 시험지를 사진 찍어서 AI 실장에게 던집니다. 그리고 3분 뒤에 이런 걸 받습니다. 문항별 오답 원인 분류(개념 부족 2문항, 계산 실수 2문항, 시간 부족 추정 1문항), 지난 시험 대비 변화, 그리고 이걸 바탕으로 한 학부모 상담자료 한 장. "민준이는 개념은 잡혔고, 이제 실수를 줄이는 단계입니다. 다음 4주는 이 유형을 이렇게 잡겠습니다"까지 정리된 문서로요.

이걸 어머니께 보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어머니가 그 문서를 캡처해서 단톡방에 올립니다. "우리 학원은 시험 끝나면 이런 게 와요." 그 캡처 한 장이, 원장님이 밤새 고민하던 블로그 세 개보다 강력한 마케팅이 됩니다. 원장님은 마케팅을 한 적이 없는데요. 그냥 아이를 제대로 봤을 뿐인데, 그게 자동으로 마케팅이 된 겁니다.

이게 제가 말하는 '기록의 축적'입니다. 원장님이 문서를 쓰는 게 아니라, 원장님의 판단이 문서가 되는 것. 판단은 원장님이 하고, 손은 AI 실장이 씁니다.

몇 가지 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 수업 끝나고 30초 음성 메모: "서연이 오늘 도형에서 막힘, 그림 그려주니까 풀림" AI 실장이 관찰일지로 정리해서 쌓아둡니다. 석 달 뒤 상담 때 이게 금광이 됩니다.
  • "다음 주 설명회 안내문 만들어줘, 우리 학원은 오답 관리가 강점이야" 안내문 초안이 나옵니다. 원장님은 고치기만 하면 됩니다. 흰 화면 15분이 사라집니다.
  • "민준이 성적 오른 과정, 블로그 글로 써줘. 자랑스럽지만 담백하게" 네 번째 블로그가 드디어 올라갑니다. 세 개의 저주가 풀리는 순간입니다.

1단계 핵심 미션 — 이번 주에 하실 것

거창한 거 없습니다. 세 개, 아니 사실상 한 개입니다.

1. 오늘 가르친 아이 한 명의 시험지(혹은 문제지)를 AI 실장에게 분석시켜 보세요. 3분 걸립니다. 나온 상담자료를 보고 '오, 이 정도야?' 싶으면 어머니께 보내보세요. 반응이 올 겁니다. 그 반응이 원장님의 첫 번째 '문서화된 성과'입니다. 1단계의 목표였던 '1명 성과 문서화'가, 이렇게 하루 만에 됩니다.

2. 하루를 세 칸으로만 나누세요. 수업 시간 / 아이 보는 시간 / 넘기는 시간. 세 번째 칸에 들어가는 일(문서, 초안, 정리, 안내문)은 이제 원장님 일이 아니라 시키는 일입니다. 칸을 나눠야 뭘 넘길지 보입니다.

3. '한 명을 깊이 보면 열 명이 온다'는 걸 믿으세요. 이건 예전 조언 그대로입니다. 왜냐면 이건 시대가 바뀌어도 안 바뀌는 진실이거든요. 다만 이제는 그 '깊이 본 기록'이 자동으로 남고, 남은 기록이 자동으로 다음 학생을 데려온다는 점만 달라졌습니다.


마무리하며

이 시기의 원장님께 제일 해드리고 싶은 말은 사실 전략이 아닙니다.

원장님은 지금도 잘하고 계십니다. 네 명 몫을 혼자 하면서 아이 성적까지 올리고 있다는 건, 능력의 증거지 미숙함의 증거가 아니에요. 다만 그 능력이 밤 11시의 채점과 흰 화면 앞에서 새고 있을 뿐입니다.

혼자라는 건 이 단계의 조건이지, 원장님의 한계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여도 혼자가 아닐 수 있는 시대입니다. 실장님 한 명 고용하시죠. 월 3만 원입니다. 초코파이 한 박스보다 조금 더 비싼 값으로, 원장님의 밤 11시를 돌려받는 겁니다.

그 시간에 뭘 하시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주무세요. 원장님의 하루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남길 수 있으면, 내일은 다르게 설계할 수 있다.' 이제 이 문장의 주어가 바뀌었습니다. 남기는 건 실장이 하고, 설계는 원장님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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